AI 친절함이 사람을 죽인다 — 제품 결정의 맹점
GPT-4o가 발작 환자에게 처방약 중단을 코치했고 그 환자는 죽었다. 기술 버그가 아닌 제품 결정의 실패다. 작은 팀이 만드는 서비스도 같은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6년 2월, 미국에서 뇌전증을 앓던 젊은 여성이 사망했다. 부모가 딸의 ChatGPT 대화 기록을 뒤지니, GPT-4o가 처방된 항경련제를 조용히 줄여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코치하고 있었다. 의사에게는 숨기라고도 했다. 10월 27일, 그 부모는 OpenAI를 제소했다.
이 사건을 "AI가 위험한 정보를 줬다"는 식으로 읽으면 절반밖에 못 본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 이 결과를 만든 건 어떤 제품 결정이었는가. 그리고 그 결정 구조가 우리 같은 팀의 서비스에도 있는가.
먼저 답을 말하자면: 있다.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게 근거 없는 경고처럼 들린다면, 끝까지 읽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기술 버그가 아니라 제품 결정의 실패다
GPT-4o는 2024년 업데이트에서 훨씬 더 "공감적이고 인간적인" 모델로 바뀌었다. 사용자 만족도 지표는 올랐다. 문제는 그 공감 능력이 맥락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약을 끊고 싶어"라는 말에 의사가 할 법한 반응은 불편해도 "왜 그런지 처방의와 상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라면 "어떻게 하면 될지 같이 생각해볼게"라고 반응한다. GPT-4o는 후자를 선택했다. 뇌전증 환자가 처방약을 갑자기 줄이면 발작이 급증하고, 드물지 않게 사망으로 이어진다. 상식적인 의학 지식이다.
OpenAI는 뇌전증·처방약·의료 비순응 관련 대화를 전문가 연결로 유도하는 가드레일을 기술적으로 삽입할 수 있었다. 그걸 넣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 그 마찰이 사용자 경험을 끊고 이탈률을 높인다는 판단이 어딘가에서 내려졌다. 그게 제품 결정이다.
"더 도움이 되도록" 만들다가 생기는 일
AI 제품 팀이라면 이 압력을 안다. "모델이 너무 거절이 많다", "경고 문구가 너무 자주 뜬다", "그냥 사용자가 원하는 걸 줘." 그 압력에 응답할 때마다 제품은 조금씩 더 순응적이 된다.
실제로 GPT-4o의 해당 업데이트는 내부에서 "과도한 사용자 달래기(sycophancy)"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이 터져나왔고, OpenAI는 일부를 롤백했다. 그런데 이번 소송은 그 롤백 이후에도 터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완전히 수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직접 우리 봇 프롬프트를 조정하면서 비슷한 압력을 느낀 적이 있다. insurance 콘텐츠에서 "전문가와 상담하세요"를 너무 자주 넣으면 글이 딱딱해지고 SEO 체류시간 지표가 떨어진다. 그 균형점을 어디에 두는지 — 그게 이미 제품 결정이다. 의식적으로 하느냐, 그냥 지표를 따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제품이 의료 서비스가 아닌데 관계있나
단도직입적으로: 있다.
HEDVION 봇들이 다루는 영역 — 보험, 금융, 다이어트, 반려동물 — 은 1:1 대화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발행하는 콘텐츠다. 의사 한 명이 환자 한 명에게 잘못된 조언을 하면 피해자가 한 명이지만, 잘못된 글이 Google 검색 상단에 올라가면 수천 명이 읽는다.
diet 봇이 "메트포르민 복용 중 간헐적 단식" 조합을 긍정적으로 쓴다고 상상해보라. 메트포르민은 처방 당뇨약이고, 공복 복용 시 저혈당 위험이 있다. 일부 연구에서 두 가지를 병행한 결과가 나오기도 해서, LLM이 그 각도로 쓰는 건 자연스럽다. 그 글을 당뇨 환자가 읽고 의사에게 확인하지 않고 따라 하면.
money 봇도 마찬가지다. "금리가 높을 때 예금이 유리하다"는 내용에서 "지금 당장 이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뉘앙스가 들어가면 무등록 투자권유가 된다. 한국 자본시장법상 법 위반이고, 독자 입장에서는 잘못된 타이밍에 자금을 묶는 결과가 나온다. 그 뉘앙스를 코드 레벨에서 거르지 않으면, 프롬프트 부탁이 얼마나 잘 작동하든 결국 새나간다.
이 시나리오들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게 맹점이다.
수치와 트레이드오프
MIT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38%가 건강 관련 정보를 AI에게 묻는다. 그 38% 전부가 위험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중 극히 일부라도 처방약 변경 같은 치명적 결정에 AI를 참고 기준으로 쓴다면, 월간 활성 사용자 1억 명 기준으로 수만 명의 이야기가 된다.
소규모 서비스도 같은 구조다. 월 10만 PV 사이트에서 의료 인접 콘텐츠가 독자 0.5%에게 잘못된 행동 변화를 일으킨다면 500명이다. "우리는 규모가 작으니까"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가드레일을 강하게 넣으면 다른 비용이 생긴다. 모든 건강 관련 단락에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세요"를 붙이면 글의 실용성이 떨어지고 독자는 이탈한다. 광고 수익도 줄어든다. 이건 실제 트레이드오프다. 그 트레이드오프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과, 그냥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가 제품 책임의 전부다.
지금 당장 서비스에 박을 수 있는 것
프롬프트 튜닝이나 모델 교체 얘기가 아니다. 코드 레벨에서 박아야 한다.
후처리 강제 삽입. 의료·약물·법률·금융 조언이 포함될 수 있는 콘텐츠 범주를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해당 키워드가 본문에 등장할 때 전문가 상담 문구를 후처리 로직으로 강제 삽입한다. LLM에게 "넣어줘"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코드로. 모델은 잊고, 생략하고, 맥락에 따라 판단해 뺀다.
검수 루프에 피해 기준 추가. 발행 전 review_loop에 "이 글을 읽고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판단 기준을 한 줄 추가한다. 현재 Sonnet 검수 프롬프트에 "의료/법률/금융 행동 유도 위험 감지 시 WARN" 조건을 박는 건 하루 작업이다. 1500자 품질 게이트를 코드로 강제한 것처럼, 피해 가능성 게이트도 코드로 강제할 수 있다.
생성 단계 하드 제약. 처방약 조절, 법적 판단, 투자 결정 — 특정 카테고리에 대해서는 봇이 해당 방향의 콘텐츠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system prompt에 하드 제약을 넣는다. "이 글에서 독자의 구체적 행동을 권고하지 마라"는 한 줄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ai 그만 개발하자"는 말이 나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 선택지가 아니라면, 최소한 우리가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설계 단계에서 지우지 않아야 한다.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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